작가 리처드 도킨스
출판 을유문화사
발매 1993.11.01
아주 오래 전, 지금은 작고하신 스티븐 호킹 박사가 "우주 탄생에 신은 개입하지 않았다"는 발언으로 종교와 과학의 오랜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던 적이 있습니다. 원래 과학과는 거리가 멀어 평소 같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뉴스였으나 하나의 이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로 리처드 도킨스입니다. 그는 스티븐 호킹의 새로운 이론을 '물리학계의 진화론'에 비유하며 "호킹 박사가 물리학계의 신의 존재 논란을 결말지을 결정적 시도를 하고 있다"며 지지를 보냈습니다. 마침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있던 때라 그의 말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습니다.
유전자의 이기성과 생명의 진화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대다수가 생명 정보의 저장과 번식의 매개체로만 여겼던 유전자가 실은 모든 생물 진화의 주체라고 주장합니다. 즉, 유전자를 가진 모든 생물은 그저 유전자를 보호하고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 유전자의 조종을 받는 "생존기계"라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신의 존재는 원천적으로 부인되고 다윈의 자연 선택만이 생명 탄생의 원동력으로 설명됩니다. 이러한 내용은 신의 존재를 믿는 저에게는 꽤나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공상 과학 소설처럼 읽어야 할 책
사실 제 문장력만 보고는 과학 이론서가 아닌 새로나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 영화 줄거리로 생각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서문의 첫 문장에서 "이 책은 거의 공상 과학 소설처럼 읽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책의 설득력과 논리성
그렇다면 이 책이 정말 공상 과학 소설처럼 그저 그럴듯하게 꾸며낸 이야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이 나온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읽고 학자들 사이에서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는 점이 이를 증명합니다. 책은 합리적 추론과 다양한 예시, 여러 비유 등을 통해 유전자 이기성 이론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수식이나 어려운 용어 없이 복잡하고 심오한 이론을 설명한 저자의 글 솜씨는 감탄을 자아냅니다.
이론의 타당성과 개인적 견해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이 사실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자의 추론을 읽다보면 상당히 그럴듯해 보이지만, 모든 생물, 특히 인간에 적용하기에는 너무 단순화된 것 같습니다. 아직 밝혀내지 못한 생명의 신비가 많기에 반박할 부분도 존재한다고 생각됩니다. 고등학교 수준의 생물 지식이 전부인 제가 이 이론의 타당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지도 모릅니다.
진화의 과정과 자연 선택
저자는 생명의 탄생과 진화에 있어 자기 복제자로서의 유전자의 특성과 그 이기성, 돌연변이, 오랜 시간을 통해 나타난 자연 선택 등을 설명합니다. 생명체가 자연 발생할 확률은 극히 작지만 이 작은 확률도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오랜 시간 앞에서는 한 번쯤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 극히 작은 확률을 우연으로 돌리기엔 "마치 되도 그만 안되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느껴집니다. 한 없이 0에 가까운 확률이 실제 일어났다는 것을 우연이 아닌 초월적 의지에 의해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정말 허황된 생각일까요? 저는 생명의 탄생에 초월적 의지가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책의 흥미로운 내용
진화론과 창조론 논쟁을 떠나, 책 본론을 보면 타당성 여부를 떠나 흥미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저는 특히 게임이론으로 동물의 행동을 설명하며 특정 조건하에서는 상생 협력의 생존 전략이 유전자의 생존에 유리할 수 있다고 설명한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개개의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에만 신경 쓰지만, 때로는 이타적 행동을 한다는 점이 모순인 듯하면서도 상생 전략이 채택될 수 있다는 설명은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습니다.
또한, 인간이 다른 생물과 다른 특이점을 보이는 이유를 문화의 존재로 설명하고, 문화가 마치 유전자처럼 자기 복제를 거듭한다는 점에서 밈(Meme)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부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특성에 적용되지 않는 설명이 많아 의구심이 들었지만, 밈이라는 개념을 통해 명쾌하게 설명한 것이 신선했습니다.
요약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한 발자국 떨어진 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공상 과학 소설 읽듯 읽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생명에 대해 나름의 추론과 분석을 통해 설명하고 있어 생물학 전공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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